시작스토리

 대학생 시절, 농구를 한참 하던 때, 사회 생활하던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일을 오랫동안 잘하려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가지고 있어야 해

일을 잘한다는 건 그만큼 잘 견뎌낸다는 이야기야.

근데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풀 수 있어야 하거든

그래야 오랫동안 즐겁게 일해. 그렇지 않으면 금방 무너진다.

그러니 대학생 때 스트레스를 푸는 나만의 방법을 가지는 게 중요해.”




 

난 당시에 일하고 있지 않았지만, 인상 깊게 들었다.

 

그 후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공허하거나 울적한 날에는 농구를 하며 기분을 전환했었다. 농구를 하는 순간만큼은 근심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샤워하는 순간 행복을 느꼈다. 녹초가 되어 침대에 스르륵 잠든 날은 더할 나위 없는 하루의 마감이라 생각했다.




 

20대까지 내기엔 답답함과 공허함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은농구였다.

하지만 불행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2015 3, 29

난 집에 가는 길에 나는 한쪽 다리를 잃게 된다.




 

친구와 함께 집에 가는 골목길에서 차량이 갑작스레 들어와 나를 치고 간 것이다.

교통사고 직후 숨을 쉴 수 없었고, 바닥에 누워 발작 증세로 몸이 떨렸다. 기억이 흐릿하다. 눈을 떴을 때 병원에 누워있었고, 부모님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왼쪽 다리 통으로 깁스가 되어있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좌측 슬관절 후방십자인대 파열

좌측 슬관절 내측 반원상 연골 파열

좌측 스관절 후외방 불안정성

좌측 거골의 연골 손상

좌측 경비간 인대 손상


병원에서 내린 진단이었다

그나마 뇌진탕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소리와 함께 무릎과 발목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6개월간의 병원 생활과 4차례의 전신 마취 수술 그리고 지옥 같은 재활 훈련을 마치고 나서야 정상적으로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병원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밤을 보냈다

억울했다.

난 무슨 잘못을 하였는가. 나는 왜 불행한 일을 겪어야 하는가. 신은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가.


그토록 좋아하는 농구는 이제 끝이라는 생각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앞으로 불완전한 다리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우울했다.


 



며칠 동안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보낸 것 같다.

침대 생활만 하다가 목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고 나서 잠깐 산책이라도 다녀오면서 마음을 풀곤 했다

다행히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 금세 다시 활기를 찾아갈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나를 구원하던 것은감사일기였다.

어머니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혼자 화장실에 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마음껏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등등 하루에 3개씩 감사일기를 적었다.





목발 생활을 하며 내가 원하는 곳에 내 두 발로 걸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많이 생각했다

그때 건강에 대한 소중함을 많이 깨달았다. 그리고 친구들이 찾아와 잠깐의 시간을 보내는 게 그렇게 좋았다.


그래서 난 누가 아프거나 힘든 상황에 있을 때 더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사실 기쁜 날 함께 축하해주고 웃는 것도 좋지만, 힘들 때 함께 해주는 것만큼 기억에 남는 고마움도 없다.

 



6개월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회사에 복직했지만, 중간중간 찾아오는 발목과 무릎에 대한 통증 때문에 병원을 중간중간 다녔다. 다행히 상사가 건강에 대한 것만큼은 잘 챙겨줘서 치료를 받으며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어 일하며 받은 스트레스와 때때로 찾아오는 공허함을 술과 게임으로 달래곤 했다. 퇴근 후 동료들과 술 한잔하며 이야기꽃 피는 것을 좋아했고, 피씨방에 가서 아재들의 게임 생활을 즐겼다.




 

그렇게 하면 마음과 기분을 풀 수 있었지만, 다음날 피곤함은 함께 찾아왔다.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허함은 더 크게 찾아왔다.

 

하지만 달리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여행을 가도 풀리지 않았고, 차를 마신다고 해도 풀리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유일한 방법으로 술과 게임을 통해 공허함과 답답함을 풀었다.


나만의 방법을 조금 개선하여 금요일이나 주말에 몰아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이렇게 어른이 되는 건가 싶었다. 주변 친구들을 봐도 비슷했고, 선배들을 보면 하나둘 셔츠 단추가 불쌍하리만큼 배가 나오고 있었다.

 

마음 한켠으로 이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운동을 다시 해보자고 헬스도 다니고 농구도 다시 해봤지만, 운동한 다음 날은 정형외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바꿔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택하게 된 것이 요리다

늦은 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마트에 들려 요리 거리를 사고 집에 가서 요리해 밥 먹는다


내가 한 요리라 그런지 내겐 너무 맛있다. 할 줄 아는 건 된장찌개 김치찌개 소고깃국 정도로 간단한 요리밖에 못 하지만 너무 행복하다

일주일에 한 번 나만의 시간으로 온전히 요리를 해 먹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사람 사는 것이 먹고 자는 것이 기본인데, 그중에 하나로 답답함과 공허함을 달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게 참으로 기쁘다.

 그래서 요즘은 나만의 이 방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사람은 따뜻한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달래 수 있다


집밥이란 게 그런 힘이 있는 게 아니겠는가

혹시 어디선가 답답한 마음과 공허한 상태라면 밥 한 끼 지어 먹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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